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특정 사태를 어떤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는, 중요하다.
동일 사안도,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전혀 다른 해석을 (다양성이라며) 모두 인정할 수도 있지만,
팽팽히 대립하는 두셋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를테면, 길을 걷다가 불의한 상황을 목격했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두들겨 패고 있던지, 힘을 빙자해 약자의 것을 뺏고 있다.
그 모습을 내가 보게(알게) 되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달려가 약자의 편에서 함께 싸우고 저항할까, 내 일이 아니라며 모른척 지나가야 할까.
선택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3의 선택?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없다.
(이때 누구의 입장에 공감하느냐가 사소한 관건이다.)
(다른 이의 도움을 청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것 등은 전자에 포함된다 치자. 사실 상황회피에 가깝지만...)
(일부는 '뭔가 사정이 있겠지''맞을만 하니까 맞고 있겠지'라는 둥, 사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는데만 집중하느라 엉뚱한 사람에게 돌팔매질하는 악수를 둔다..)
자신의 선택이 하나둘 쌓이고 쌓여, '나'라는 사람(삶)이 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곧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와 통한다.
즉, 위의 두 문장은 동일한 의미다.
너무 당연한 소리인가?
의외로 자주 잊거나, 아예 모르는 것 같다.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순간의 안락함이나 즐거움(쾌락)을 영원한 행복이라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인간은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유혹을,
마치 인간 삶의 '필요'조건이라 착각하며 갈망한다.
그 결과, 자신이 애초 생각하던 '이상적 삶'의 모습과 배치되는 선택을 곧잘 하고,
그로 인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자괴감을 느낄 때의 그는 참 인간적(?)이다.
한때 혐오하던 삶을 옹호하고, '본래 내가 원했던 것'이라며 합리화하는 건,
참 비극이다.
그렇게 살아가다, 조금씩 죽어간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혹은 뜬구름 같은 소리지만, .
한주 내 우울에 시달리던 나를 위한,
반성문이다.
'관계와 소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 (0) | 2012/01/21 |
|---|---|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0) | 2011/02/23 |
| 사랑 (0) | 2011/02/17 |
| 연.애.시.대. (1) | 2009/03/03 |